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.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음악을 듣지 않고 친구들이랑 어울렸다. 지금은 스마트폰이다, mp3다 해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지만, 그때는 워크맨, 시디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. 뭔가 바쁘면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.
그러다가 MP3가 나오면서 음악을 공짜로 다운받을 수 있는 방법이 나왔다. 소리바다에서 다운로드받아서 윈앰프로 플레이리스트 정리해가면서 들었다. 구하기 쉬운 음악이어서 그런지, 컴퓨터를 포맷할 때마다 쉽게 없어졌다. 백업의 개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한 시절이었다.
그러다가 애플에서 기계식 클릭휠이 되는 아이팟을 내 놓았다. 학교에 포스터가 도배를 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. 그때는 거원(그때 이름은 코원이 아니었다, 분명히 거원이었다.)과 아이리버가 대세였거든. 나는 동아리인 영자신문사에서 신문 편집 작업에 쓰이는 맥 컴퓨터에 대해 잠재적인 호기심이 있어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,가격을 알아버리고 곧 단념했다. 비싼 가격 때문에 주변에서 쓰는 친구들이 없었다. 나는 그냥 계속 내 128MB 거원 mp3를 들었다.
영어를 잘 하고 싶어서 동네에서 외국인 영어교사들과 어울렸다.
그중 그렉이라는 영국 친구가 있었는데 맥북 프로와 아이팟을 사용하고 있었다. 지금이야 맥북 프로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노트북이지만, 그 당시에는 인텔 CPU를 쓰고 있을 시기도 아니어서 흔히 보기 힘든 제품이었다. 몇번 구경하다가, 장점을 물어보니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음악을 관리하고 있는 방식을 보여주었다.
장르-아티스트-앨범-노래로 이어지는 4개의 계층을 한번에 볼 수 있고, 조건에 따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스마트한 프로그램이었다. 나는 첫 취직이 된 후에 아이팟 30기가를 샀다. 회사 동료를 제외하고 지인들이 별로 없는 서울생활에서 한동한 mp3태그 관리가 취미였지만, 어학 자료들을 포함한 총 mp3자료의 양이 200기가가 넘는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음악은 삭제하는 것이 일이다.
나에게 애플 컴퓨터와 아이튠즈, 아이팟을 알려줬던 그렉은 몇 년 뒤 서른살 중반에 뇌출혈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.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가 투병생활 할 때 바쁘다는 핑계로 몇번 보지 못했지만, 지금은 그가 가끔 그립다.